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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평화저널 플랜P] 모든 존재를 주인공으로 인식하면 달라지는 것들

와이즈서클
2021-12-01


모든 존재를 주인공으로 인식하면 달라지는 것들

 

- 이은주 (본지 기획위원)

 

드라마 작품 안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기승전결 구조가 있어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항상 마음을 졸이며 보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 자체로 안심은 된다. 주인공이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서로 간에 오해가 생기고 실패와 좌절도 겪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중간에 갑자기 사라지거나 결말에 도달하지 않은 채 드라마가 종영되진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주인공은 잘될 거다.

 

현실 속 인물들을 바라볼 때도, 각자를 그 자신의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때와 다른 깊이의 이해와 접근 방식이 생기기도 한다. 사건의 배경이나 그의 감정 상태를 탐구하려 들면서 깊은 이해력이 돋고, 연민과 존중, 신뢰하는 마음이 커진다. 가령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어떤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지만, 왜 이런 일을 겪는지 나중에 보면 알게 되겠지’ ‘잘되어 가는 과정 중 어디쯤 있는 걸 거야’ 하는 등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방식에 맞추도록 강요하기보다 응원해주려는 시청자 모드로 전환한다. 주연이라니까 새삼 예뻐 보이는 것도 있다.

 

갈등을 다루는 대화를 진행하는 때도 나는 각자를 그들만의 드라마 주연으로 바라보는 시청자 모드로 있어보는데, ‘앞으로 서로가 무엇을 어떻게?’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가장 그러하다. 진행자로서 때로는 뭔가 확실히 종지부를 찍는 이야기를 하고 마치면 좋겠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이야기 다 됐다고 하면 그걸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그들의 진심어린 결정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다.

 

이때 대화의 결과를 기다리는 주변 이들은 노심초사하며, 당장의 자기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마음을 급하게 쓰기도 한다. 결과에 대해 단순히 ‘해결됐다’ ‘안 됐다’라며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면서 더 개운하게 해결해 달라고 진행자를 쪼기도 하고, 당사자들을 찾아가 본인들이 바라는 결과대로 따라주길 부탁하기도 한다. 갈등 당사자들에게는 이번 대화를 끝으로 본인들의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게 아닌데, 주변인들은 마치 자신이 보던 작품이 해피엔딩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것을 보고선 또 다음 작품을 찾으려는 듯 다급하게 군다.

 

당사자들 각자의 드라마 속에서 이번 에피소드가 어떤 챕터에 어떠한 색채로 등장할지 그 당시엔 모를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회가 다가오기 전까지 적당한 때에 어떤 방식으로든 그만의 스토리 안에서 알맞게 자리 잡힐 것이다. 곁에서 우리는, 주인공이니까 잘될 거라는 신뢰를 품고 지켜보며 믿고 응원한다. 그 과정이 지난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도 있을 것이다. 만일 뭔가를 더 하고 싶다면, 본인이 끝까지 그를 신뢰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평화저널 플랜P>가 지금의 우리 사회를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을 신뢰하면서 자신만의 일을 한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여러 사건들과 사람들을 깊은 존중으로 살피는 모습이 아닐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당장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도, 아직은 빙산의 일각만 알 수 있고 개운한 결론에 해당되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어도,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삶 전체를 신뢰하며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다. 의도한 결과보다 좀 아쉬운 일이 있어도, 평화의 힘으로 얻은 성취가 작아보여도 신뢰의 마음으로 그러한 과정 전체를 함께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현실은 폭력 덩어리이며 평화는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라고, 당장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평화는 유보해놓자고 하지 않고, 우리는 이미 전체가 평화인 삶 속에 있고, 매 순간의 관점과 태도가, 삶이 곧 평화이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호 키워드인 ‘언론’을 향한 신뢰 모드는 어떤 걸까. 언론은 서운하게도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먼저, ‘언론이라는 이 주인공의 드라마도 쨌든 잘 될 거라고 신뢰부터 해본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라고 질문해본다. 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민간 영역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떠오른다! 민간이 직접 사건과 논란들을 취재하고 손수 정보를 전달해준다거나, 그게 어렵다면 기사를 올바로 소비하도록 돕는 교육이나 언론기사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

 

<평화저널 플랜P>는 이 전부를 다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 계간지를 통해 많은 이들의 평화적 감수성과 시각이 키워진다면 그 기준대로 기사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거나, 언론사에도 ‘A의 목소리가 빠졌으니 이곳도 가서 인터뷰해주세요’, ‘표면만이 아닌 사건의 심층을 읽어주세요’, ‘B라는 측면으로도 접근하여 취재해주세요’ 등의 제안을 던지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열심히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면 좋겠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려 하거나, 전체가 다 보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부만 보거나 한쪽 방향으로만 접근하려는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 과정을 신뢰한다는 것 말이다. 그래도 모두가 조금씩 함께 해보면서, 그렇게 평화를 같이들 살아내길 오늘도 소망해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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