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이야기 서클 모임의 관계 (책 '외로움 벗어나기 프로젝트')

2026. 3. 9. 09:53서클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과 나누는 것에는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스스로를 돌보는 습관을 길러주며 안녕감을 증진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친밀해지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

로비 맥컬리(Robbie McCauley)는 매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연극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인 오비(Obie)상을 수상한 극작가이자 배우로, 1형 당뇨병을 앓는 흑인 여성의 경험을 담아낸 자전적 1인극 <슈가>를 쓴 인물이기도 하다. 로비는 이 작품을 쓸 때 정치의식을 높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이야기 서클(story circle)’이란 기법을 활용했다고 내게 설명해주었다. 먼저 그녀는 당뇨병을 앓고 있는 다른 흑인 여성들을 모집해 원형으로 모여 앉은 자리에서 한 사람씩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했다. 이후 그 가운데서 괜찮은 내용들을 정리해 극본에 녹여냈다.


이야기 서클 모임을 진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로비는 혈당 수치가 치솟는 일명 혈당 스파이크를 자주 경험하는 등 당뇨병 관리에 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모임을 하고 나서는 혈당 스파이크가 나타나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고 병을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현재 당뇨병 연구와 치료에서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의 최고의료책임자 앨런 모제스(Alan Moses)의 견해에 따르면, 이야기 서클 모임을 하면서 로비가 엄청난 안전감을 얻은 결과 코르티솔 생성이 감소해 혈당이 안정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비슷한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유대감을 형성하자 그로부터 생겨난 안전하다는 정서적 신호에 로비의 몸이 반응한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 더는 혼자 외롭지 않을 수 있게 되자 로비의 몸은 코르티솔 생성량을 줄였다.

다이애나라는 이름의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통스럽고, 슬프고,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모임시간에 함께 나누었잖아요. 몰래 케이크 한 조각씩 먹거나 약 먹는 걸 잊어버리는 게 나뿐만이 아니란 걸 알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고요. 덕분에 나 자신을 실패자로 보지 않고 몸이 좋아지게끔 신경 쓸 힘을 얻게 됐어요.” 그러고는 프로그램이 끝나서 아쉽지만 이 모임을 통해 얻은 인간관계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며 희망을 드러냈다. “빨리 다 같이 만나서 그동안 즐거웠던 일이나 당뇨병 때문에 힘들었던 많은 순간들을 계속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이애나에게 있어 창의활동 모임은 혼자서 끙끙 앓던 무언가를 해결해준 시간이었다. 이 모임에 참가한 경험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전보다 효과적으로 병에 대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이 줄었다. 6회기의 프로그램 덕에 다이애나는 건강을 얻고 외로움을 덜었다.

창작활동 뒤에는 그림, 조각, 시, 춤 동작, 정원에 심긴 식물 등 자신은 물론이고 감상하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뚜렷한 작품이 결과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창의적 표현의 결과물을 남들과 공유해 그들이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인정해주면 다른 이들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아봐주고 곁에서 지켜봐주는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특히나 서로에게 관심이 부족하고 산만하며 익명성이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서 손에 넣기 어려운 특정 종류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 제러미 노벨, <외로움 벗어나기 프로젝트>, 2장 ‘창의적 표현활동이 지닌 힘’ 중에서